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드뤼사이 왕국 (문단 편집) === 일시적인 분열과 [[코티스 1세]] === 세우테스 1세는 기원전 411년 [[갈리폴리 반도]]를 공략하려 했다가 아테네군에 격퇴당한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투키디데스의 역사에는 그의 죽음이나 후계자의 등장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기원전 405년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 때 아테네 해군에 접근한 [[알키비아데스]]가 "나는 트라키아 왕 메도쿠스와 세우테스를 친구로 두고 있다"라고 자랑한 걸 봤을 때, 이 시기에 왕국이 메도쿠스(또는 아마도코스 1세)와 세우테스 2세의 세력으로 양분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메도쿠스 또는 [[아마도코스 1세]]'''는 트라키아 내륙 지역을 다스렸던 것으로 보이며, '''[[세우테스 2세]]'''는 아폴로티아 폰티카에서 스트란차 강 너머 북부 프로폰티스 해안 일부까지 이르는 트라키아 동부 일대를 다스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400년, 세우테스 2세는 그리스 용병들을 고용하여 테레스의 후예를 자칭한 트라키아인이 이끄는 부족 연합을 격파하고 지배권을 확장했다. [[크세노폰]]에 따르면, 그는 메도쿠스 또는 아마도코스 1세를 주군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우테스 2세는 몇년 후 메도쿠스 또는 아마도코스 1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의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단지 기원전 389년 아테네 장군 트라시볼로스가 둘을 중재해 세우테스 2세가 아마도코스 1세의 권위를 인정하는 대가로 트라키아 해안 지대의 지배를 인정받았다는 사실만 알려졌다. 메도쿠스 또는 아마도코스 1세는 평화 협약을 맺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헤브리젤미스]]'''는 아테네와 동맹을 맺었다. 반면에 세우테스 2세는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었다. 얼마 후 세우테스 2세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지만, 이번에는 거의 모든 영토를 잃고 축출되었다. 그러다 아테네 장군 이피크라테스가 이끄는 용병대가 트라키아 해안지대를 점령하고 세우테스 2세에게 넘겨줬고, 세우테스 2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아들 코티스 1세의 딸을 이피크라테스에게 시집보냈다. 기원전 384년 세우테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코티스 1세]]'''는 이피크라테스의 도움으로 기원전 383년에 사망한 헤브리젤미스의 후계자로서 왕국을 통합하고 아마도코스 2세와 사라토코스를 포함한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이후 에게 해와 체르소네스 방면으로 왕국을 확장하려 하자, 이 지역에 세력권을 갖추고 있던 아테네는 위협을 느끼고 체르소네스 일대의 여러 도시와 섬들을 끌여들여 연방을 결성해 그와 맞섰다. 코티스 1세는 아테네 연방과 일진일퇴를 벌인 끝에 기원전 360년 체르소네스 반도의 거의 모든 지역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원전 360년 9월, 체르소네스 반도의 마지막 아테네 연방 도시인 세피소토스를 공격하던 중 파이톤과 헤라클레이데스에게 암살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